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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마법에 걸린 그해 여름

마법에 걸렸던 그해 여름... [10]


마법에 걸렸던 그해 여름... [10]

 

아침에 꽤 상쾌하게 일어난 탓에 윤하는 기분이 좋았다. 어젯밤에 늦게까지 책을 읽다 잠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침에 눈을 떴을때 잠이 남아 찌푸둥한 느낌없이 꽤나 산뜻하게 일어날수 있었다. 왠지 좋은 일만 일어날것만 같은 날이였다.
안 그래도 래프팅 여행을 갔다온지 이틀이 지났고 회사측에서도 이제 슬슬 녹음 작업을 시작하자는 뜻을 밝혀서 오늘부터 시작할 참이라 그런가 보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윤하의 밝은 인사에도 한사코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 시선들... 이상한 느낌이 이내 그녀를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보통때 같았으면 회사 식구들도 같이 밝게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물었을 텐데....


물론 이런일이 처음은 아니였다. 한번...토이의 객원 보컬로 녹음을 한후 한 기자의 어처구니 없는 기사로 그녀를 한번 고생시켰을 때도 이런 분위기였다.


그때를 생각하니 불현듯 마음이 조급해지고 불안한 마음에 윤하는 녹음실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소식은 잔혹하기 그지 없었다.


대표이사와 현다혜 팀장, 그리고 그 외에 많은 회사 식구들이 한 노트북 앞에 둘러 앉아 있었고 그녀의 노래하는 목소리, 아니, 정확히 실수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일이에요?" 침착한 목소리로 묻는다고는 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갑작스런 등장에 모두들 당황한 기색이였고 노트북앞에 앉아있던 그녀의 매니져가 서둘러 화면에 뜬 동영상을 끄려고 했지만 윤하가 재빨리 그의 손을 잡고 말렸다.


화면에는 그녀가 지금까지 무대와 방송에서 냈던 몇몇의 음정, 또는 가사를 햇갈린 자질구레한 실수들과 온갖 굴욕 캡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리허설 장면들을 교묘하게 이용해 실수로 가장하기도 했고, 썼던 음원, 또는 동영상을 또 써서 보다 많이 실수한것처럼 하기도 하고 방송에서 했던 말들을 적당히 편집해 방송에서의 흐름과는 전혀 달랐던 상황을 연출해 비호감으로 다가왔다.


그 밑에 있는 수많은 악성댓글들...그녀의 많은 팬들이 변호를 해 주었지만 악플을 다는 네티즌들은 그에 화답도 하지 않고 줄기차게 윤하에 대한 비판만을 달고 있었다.


"이번에 타격이 좀 커요... 프로듀서들과 투자자들이 발빼기 시작했어요."


한 사원이 이야기하자 현 팀장이 그 사원의 뒷통수를 한대 쳐 입을 다물었다.


"조용히 안해?"


그렇게 꾸중을 한후 다혜는 윤하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그런거 걱정할 필요 없어요. 우리가 다..."


그녀의 말이 채 끝내기 전에 윤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녹음실로 들어갔다.


아무 소리가 안 들렸다. 또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수 없었다.


바깥이 보이는 창문을 등진채 그녀는 서서 한숨을 가늘게 뱉고선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난 잘 할수 있다. 난 잘 할수 있다. 난 잘...잘 할수..있 흑흑..."


무너지는 그녀의 가녀린 몸... 마음 여린 그녀가 과연 얼마나 더 버틸수 있을지 박 대표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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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진은 가만히 모니터를 노려 보기만 했다.


단순한 안티의 소행이라고 하기엔 너무 짜임새 있진 않은가? 게다가 언제부터 안티가 자신이 싫어하는 아티스트의 자료를 이렇게 많이, 게다가 희귀한 것들까지 다 모으겠는가?


분면 누군가 그녀를 무너트리려는 자의 소행임이 분명했다.


기자? 상대 소속사? 라이벌 가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윤하에게 중요한건 서 있는 것이다. 이런거에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느것...


"That's horrible... How could they do something like this?
(진짜 끔찍하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데?)"


숙소안으로 들어온 페이의 한 마디가 의진을 깊은 생각으로부터 현실로 불러 들였다.


"What do you mean?
(무슨 말이야?)"


페이와 함께 들어온 키스가 대신 대답했다.


"That video. The investors and producers decided to pull out of this album because of it.
(그 동영상말이야. 그것땜에 투자자들이랑 프로듀서가 앨범 작업에서 손 떼겠데.) "


의진의 표정은 마치 둔탁한 무언가에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했다.


어쩜 그럴수 있단 말인가? 단지 이런 조그마한 일에 지레 겁을 먹고선 그런 섣부른 결정을 할수 있단 말인가? 재능을 대중 때문에  포기한단 말인가?


잠시 생각하던 의진은 이내 전화기를 들어 어디로 번호를 돌렸다.


"박 대표님. 앨범 활동. 좀 늦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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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간이 지났을까...녹음실엔 이제 그녀만이 남아 있었다.


들어와서 그녀를 달래보기도 하고, 위로도 하고, 이내 윽박 지르기까지 하던 식구들도 이내 한명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하도 오래 울은 탓인지 마른 울음만 꺽꺽 나왔다. 목도 쉬고 눈은 부은지 오래다.


그때 열리는 문. 또 다시 아주나 다혜 팀장이 달래서 데려가려고 하는가 보다 하고 고개를 문으로 부터 돌렸다.


"뭐하냐? 앨범에다가 스페셜 트랙으로 녹음 하려고? 그런거 혐오스러워서 팬들도 안 좋아해."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윤하는 고개를 들어 문쪽으로 얼굴을 돌렸고 그곳에는 의진이 서 있었다.

 

"우워! 아우, 죄송해요! 윤하인줄 알았는데 왠 괴수가 계시네요.  다시 괴수질 하세요."


피식 나오는 웃음이 그녀의 감정을 배신했다.


"오호라~ 너, 울다가 웃으면..."


"됐어!"


"킄킄킄... 너, 근데 왜 이렇게 목소리 쉬었어? 너 가수야! 그렇게 목 관리 소홀히 해서 앨범 내겠어?"


의진의 질문에 윤하의 얼굴에 돌던 웃음기가 사라졌다.


"못 들었구나... 이번 앨범..."


"알아. 동영상도 봤고, 악플도 읽었고, 프로듀서랑 투자자들도 없다는 것도 알아."
의진은 아까와는 다르게 굳은 얼굴로 윤하를 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쓸어질 거야? 그렇게 무너져서 울고 패배를 인정할 거냐고?!"


녹음실이 떨리도록 울리는 그의 음성이 윤하의 어깨를 강타했다.


"그들의 편견 때문에 너의 목소리를, 너의 음악을, 너의 가슴을 묻어둘꺼야?!!"


"그럼 어떻게 해? 아직은 앨범하나를 프로듀싱할 재량도 안 되고 그렇다고 내 자비로 앨범을 낼 만큼 돈이 있는것도 아닌데!"
윤하가 새로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며 되물었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들려오는 의진의 목소리.


"내가 한다."


윤하가 놀라며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자 그가 다시 그의 말을 각인 시켰다.


"내가 프로듀서이고 내가 투자한다. 그러니까 넌... 내가 이끄는 길만 따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