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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20세기 탐정, 21세기 소녀

20세기 탐정, 21세기 소녀 03. 추리의 과학-1


20세기 탐정, 21세기 소녀 03. 추리의 과학-1

 

 


다음날 아침 나는 약속한 시간에 그녀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윤하씨!"
"이봐, 김성희~ 어제 말 놓기로 했잖아! 불편하게 이러기야? 함께 살려면 볼꼴 못볼꼴 다 봐야 할텐데 최대한 빨리 친해져야지!"
"아, 미...미안."
"괜찮아, 지금부터 서로 알아가면 되지. 가자!"
"아, 으...응"

 

그렇게 한명만 편하고 한명은 어색한 그림을 그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저기.... 근데 키가 몇이에요...?"
"시끄러..."

 

마침내 배꽃길 221번지 B동에 도착했을때는 놀랍게도 서로 많이 편해진 상태에서 웃으며 대화도 나눌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방을 둘러보니 편안해 보이는 침대 두개와 밝은 느낌의 장식에 커다란 창문 두개가 방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모든면에서 집이 마음에 들었고 월세조차 우리 둘이 나누었을때 금액이 조건에 맞았기에 그자리에서 계약을 결정했다.

 

"자, 이제 슬슬 짐을 들여와야겠지? 난 좀 가져올게 많아서 아마 내일이나 오게 될거 같아. 성희 넌?"
"난 오늘밤 바로 올것 같아. 내가 미리와서 내것 정리하고 내일 네 물건들 같이 정리하면 되겠네."
"그래. 헤어지기 전에 밥 한번 먹자! 우리의 새 우정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가서 보리밥 정식을 나 윤하가 사마."
"우정과 보리밥 정식은 무슨 관계가 있지?"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

 


그날밤 나는 빠빠땨야와 내 짐상자를 옮겨와 자리를 잡았고 윤하는 다음날 아침 많은 양의 짐들과 가방을 들고와 며칠간은 자리를 잡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윤하와 같이 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 시끄럽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였고 왠만하면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했다. 12시 이후에 깨어있는 경우는 드물었고 내가 깨기 전 항상 아침을 먹고 나가기 일수였다. 가끔은 화학실에 가있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때는 해부실에 가 있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때는 긴 산책을 할때도 있었다. 많은 경우 이런 산책은 좀 의심스러운 장소로 향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필 받으면 윤하의 에너지는 정말 극에 달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다운되는 날이면 며칠을 간이소파에 앉아 아침부터 밤까지 꼼짝을 안하고 말 한마디 안할때도 있었다. 이럴때에는 마치 약에 취한듯이 표정이 너무나 눈이 멍하고 죽어있는듯한 경우도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에 대한 나의 호기심과 그녀의 생활에 대한 궁금증은 깊어만 갔다.


일단 외모에서부터 윤하는 나에게 인상이 깊었다. 윤하의 말로는 160센치 초반이라지만 165센치인 내눈에는 150 중후반 정도의 작은 키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마른 체형 덕분에 얼핏봐서는 키가 그리 작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굽높은 신발 또한 그녀의 키를 가리는데 한몫할것이다.


그녀의 눈은 위에서 언급한 기간만 빼고는 항상 무엇이든 꽤뚫어볼듯이 날카로웠다. 오똑한 코조차도 무언가 작지만 당찬 그녀의 포부를 나타나는듯 했고, 다부진 턱선조차 결의에 찬 인상을 심어주었다.


윤하의 손은 항상 잉크나 화학물질로 얼룩졌지만 복잡하거나 섬세한 과학기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손놀림을 봐서는 덜렁거리지는 않는듯 싶었다.

 

독자는 혹 내가 남에 일에 간섭하고 뒤나 캐는 사람으로 오해할수 있겠지만 전에 말했듯 나는 내 인생을 바쳤던 군대에서 버려져 친구 도 많지 않은 사회로 내몰아졌고 딱히 목적이나 길이 없었을 시기였다. 갈곳이나 신경쓸 일이 많지 않았기에 윤하를 관찰할 시간만이 내 인생에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한준이가 언급했듯 윤하는 자신이 의과를 공부하지 않는다는것을 밝혔다.
"그럼 네가 공부하는 과목들을 봤을때.... 딱히 어느과라고 짚기에는 다 애매한걸?"
이렇게 묻자 그녀에게서 돌아온것은 의미심장한 웃음뿐이였다.


과연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놀라우리만큼 방대하였다. 절대로 어느 누구도 아무 목적이나 방향이 없이 그만큼 공부한다는 것은 상상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 누가 무엇에 쓸일이 있지 않는한 그만큼의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겠는가?

 

하지만 엄청난 지식에 비해 윤하의 무지함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현대 문학, 철학, 그리고 정치학에 관해서는 아는게 전혀 없는듯 했다.

 

어느날은 내가 챌을 읽고 있는데 윤하가 다가와 물었다.
"또 책읽어?"
"응.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힌다는 위인의 얘기도 있잖아."
돌아온 윤하의 대답에 난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게 누가한 얘긴데? 무슨 위업을 남긴 사람이야?"
윤하는 안중근 의사가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것이였다.....

 


하지만 윤하의 무지함에대한 놀라움이 극에달한것은 윤하가 태양계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는것을 알고난 후였다.
"아니, 21세기에 그 누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것을 모를수 있어?!"
"그렇게 이상한건가? 뭐 어때. 어차피 이제 잊으려고 노력할건데."
"잊는다고?!"
나의 놀란 표정을 보고 윤하가 설명했다.
"난 말이야, 인간의 두뇌는 창고 같은것이라고 생각해. 창고안에는 내가 보관하려는것을 모아두지. 어리석은 이는 혹여 나중에라도 쓸까봐 온갖 잡동사니를 모으고는 결국에는 꽉차고 복잡해져서 필요한때에 물건을 찾기 어렵지.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창고에 무엇이 들어가나 꼼꼼히 살피는거야.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도구를 많이, 하지만 질서있게 정돈하는 거지. 뇌의 창고의 벽이 무한하다고 생각하는것은 오산이야. 어느정도에 이르면 새로운 지식 때문에 전에 알던것을 잊게되는 한계에 다다르게 되지. 그렇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게 뭔지 알아야돼."


"하지만 태양계..."


"그게 어떻다고?" 윤하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듯 짜증섞인 목소리로 내 말을 끊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던 달 주위를 돌던 그게 내가 하는 일에 전혀 지장이 있는게 아니잖아."


그래서 정확히 네가 하는 일이 뭐냐 라고 묻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았지만 그녀의 표정에서 왠지 묻지 말아야할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결국 나는 혼자서 우리가 나눈 이 짧은 대화에서 대답을 얻기 위해 유추해보았다.
자신의 일에 필요한 일을 하기위한 지식만 모은다.
그렇다면 그녀가 잘아는 지식이 뭔지 알고 종합해 보면 알것 같았다.


고윤하 - 그녀의 한계
1. 문학 - 무지함
2. 철학 - 무지함
3. 천문학 - 무지함
4. 정치학 - 약간
5. 식물학 - 다양함; 아편, 독초, 약초 등의 지식은 다양하나 실용적인 원예에 대한 지식은 없는듯 하다.
6. 지리학 - 실용적이나 한계가 있다; 눈으로 보는것만으로 흙의 종류를 구분해내는 능력이 있다. 어떤날은 자신의 바지단에 묻은 진흙 얼룩을 보고는 어디에서 튀었는지 중얼거리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7. 화학 - 방대한 지식을 보유함
8. 해부학 - 정확함
9. 사회 - 일방적. 근대사에 일어난 모든 극악무도한 사건들에대해 잘아는듯하다.
10. 피아노 연주 실력이 뛰어나다.
11. 태견, 유도, 검도, 봉술등 상당한 무예실력을 소유
12. 법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음.


이정도 써내려 갔을때쯤 결국 포기하고는 종이를 구긴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뭐 이리 난잡하게 모였대?! 무슨 지식이 이런것들이 다 필요로 하냐고?!"
그렇게 절규를 하다가 빠빠땨야와 눈이 마주치자 민망함이 몰려왔다.
"왜, 너도 내가 한심해 보이냐?"
"왈왈!"
"젠장. 너 오늘 밥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