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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20세기 탐정, 21세기 소녀

20세기 탐정, 21세기 소녀 05. 첫 미스테리-1


20세기 탐정, 21세기 소녀 05. 첫 미스테리-1

 

"차타고 가자. 좀 멀어."
하숙집에서 좀 떨어진 차고에 도착한후 윤하는 커버가 씌어진 자동차에 시트를 벗기고 윤하의 차를 본 나는 입이 다물수 없었다.
그야말로 내 생애에서 잊혀질수 없는 광경이라고 할수밖에 없었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벤틀리 컨티넨털 GT를 모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아마 다섯 손가락안에는 들거라고 본다. 그나마 내가 이 차의 이름을 아는 오직 단하나의 이유는 5성 장군이 모는 것을 한번 봤기 때문이였다. 그런데 내가 타볼 기회가 올줄이야.....

 


"이..... 이....... 이차......"

 

"음? 아! 이거? 너무 신경쓰진 마. 그냥 차야."

 

"ㅇ...으어..... 어.."

 


"뭐해? 안타?"


"아? 응!"

 

차안에 타서도 입은 다물수가 없었다. 2인승 스포츠카라는게 무색할정도로 인테리어는 리무진 뺨치듯 고급스러웠다.

 

"이차 되게 비싼차 아니야?"


"음, 뭐 그렇다고 하더군."


"너 탐정일로 돈을 얼마나 버는거야, 도대체?!"

 


"아, 내가 산게 아니야. 나 그럴만큼 재력있지 않아. 단지 한번 유명 기업과 관련된 사건이 한번 있었는데 그 회장이 고맙다고 선물한거야. 사실 난 이 차 별로야. 워낙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서 미행하기도 불편하고."


".....평생 이런차 한번 타보지도 못하고 죽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즈막히 중얼 거리자 윤하는 미소로 답했다.
"알아, 이렇게 얘기하는게 건방지게 들린다는거. 난 단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에는 안 맞는다는것 뿐이지."

 


한번도 차안에 테레비가 있는것을 못본 나는 차에 설치되어서 벤틀리 로고를 띄운 화면만 보고있는 내가 재밌다는 듯이 바라본후 재밌는 생각이 떠오른듯 윤하는 핸들에 버튼 하나를 눌렀고 어디선가 <또로롱~> 하는 맑은 소리가 들렸다.

 

"TV on." 윤하의 짧은 한마디에 다시 맑은 종소리가 울리고 화면은 아침프로로 바뀌었다.

 

<<이번 작품은 유명 배우 김유빈씨가 대본을 직접 썼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현장으로 가 인터뷰 기회를 제가 얻었습니다.>>


이내 화면에는 김유빈의 모습이 보였다. 뮤지컬 배우는 대게 주목을 못 받는데 김유빈은 영화한편에 출연하고 이후로 스포트라이트 밑에서만 활동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연예인보다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하긴... 매혹적일 정도로 어두운 피부에 그윽한 눈빛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빠져들만했다.


<<이번 작품은 유빈씨에게 특히나 애착이 갈듯 생각이 드는데요.>>
<<네, 물론이죠. 사실 글을 쓸때 한사람을 염두하고 쓴 내용이 많거든요. >>
<<아니, 그럼 무척이나 소중한 사람이겠네요.>>
<<네. 그래서 이번 공연은 그사람이 꼭 왔으면 좋겠어요. 한번도 제 작품을 보러 온적이 없었거든요.>>
<<혹시....연인..?>>
<<...글쎄요...? 하하하하>>

 

"아... 저런 사람이랑 사귀는 남자는 진짜 행운아겠다..."


내 얘기는 아랑곳하지 않는듯 윤하는 무심히 운전만 했다.

 


"Tell Me라는 뮤지컬할때 첨 봤는데, 정말 잘하는데. 넌 어떤 작품 좋아해?"

 

"....본적 없어."

 

"진짜? 김유빈 뮤지컬을 본적이 없단 말이야? 그럼 영화 쏘핫은 봤어?"

 

윤하는 초지일관 무관심하다는 표정으로 운전만 하고 있었다.

 

"아무 작품도 안봤어."

 


"하나도?! 노바디도?"

 


짜증났다는 듯이 윤하는 이번엔 직접 손으로 버튼을 눌러 테레비를 껐다.


<<이번 새 작품 <두개의 눈물>은 그녀의- 또로롱~>>


 

"연예인 신경쓸 겨를 있으면 이거나 한번 봐."

윤하는 파일 하나를 내 무릎위에 던졌다.


"규리가 가져온 거야. 현장조사 결과."

 

서류에 의하면 순찰을 돌던 순경이 새벽 두시경에 빈집에서 불빛이 세어나오는 것을 보고는 수상한 마음에 조사를 하러 집안으로 향하자 문이 열려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집안으로 들어가보니 거실에는 옷을 잘 차려입은 남자가 죽어 있었다.
주머니안에는 이녹 박 이라는 미국 운전면허증이 들어있었고 주소는 뉴욕으로 적혀 있었다. 물건을 도난당한 흔적은 없고, 사인을 밝힐만한 단서도 없었다. 방에는 핏자국이 있었지만 사체에는 상처가 전혀 없었다.

 

"규리에게 의하면 12시전까지만 갈수 있다면 사건 현장을 보존해줄수 있다고 했으니까 시간 여유가 좀 있을듯해. 하지만 임병진 형사까지 같이 사건을 맡았다니까 좀 복잡할거야... 똑똑하지만 자존심 쎄고 참을성 없는 아저씨야.... 게다가 그 남자랑 규리랑은 붂꽃튀는 경쟁관계에 있거든. 경찰계는 거의 임병진 형사파와 규리파로 나뉜다고 해도 무난해. 흐, 그래봤자 올드블러드 (Old Blood) 대 뉴블러드 (New Blood) 사이에 정권 싸움으로밖에 안 보여. 대략 신참에다가 여자인 형사가 뭘 할수 있겠냐 그리고 늙어서 감 떨어졌다하면서 서로 경쟁하고 시기하고. 한사건에 두명이 뛰어들었으니 해결하는 동안 재미있을거야."

 

그녀는 이내  그레모나 산(産) 바이올린은 어떻고, 스트라디바리우스ㅡ와 아마디의 바이올린은 뭐가 다르다느니 하면서 어리애처럼 연신 떠들었다.
난 우리가 맞닥뜨릴 끔찍한 사건이 가슴을 짖눌러서 잠자코 있었다.

 

"넌 지금 사건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거 같다."
나는 참다못해 윤하의 음악 강의에 끼어들었다.
"아직은 밝혀진게 아무것도 없잖아. 증거를 모두 확보하기 전에 미리 가설을 세우는 건 가장 치명적인 실수야. 판단력을 흐리게 하거든."

 


차는 이내 교외로 향해갔고 곧 비포장 도로로 변했다.
덜컹거리고 차에 진흙을 뿌리는 도로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정작 차의 주인인 윤하는 관심조차 없는듯 했다.

 

정작 나는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ㅠㅠ

 

"여기서 내리자." 갑작스런 윤하의 제안에 차 생각에만 몰두하던 난 주위를 둘러보았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알았다.


"사건이 허허벌판에서 일어난거야?"

 

내 질문에 윤하는 씩 웃으면서 차에서 내렸다. 나 또한 조심스럽게 따라내리자 밤새 내린 비로 길이 질척한 진흙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신발에 묻지 않게 하려고 조심스럽게 발을 놀리는데 윤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음. 그래, 똑똑한 행동이야. 조심해서 가장자리에서 조심해서 걸어."


이내 100미터 앞에서 문제의 빈집이 보였다. 집과 길 사이에는 병약한 화초들이 듬성듬성 나 있는 작은 정원이 있었고, 그 사이로는 자갈이 섞인 노란색 진흙길이 가로 지르고 있었다. 정원 주위는 위쪽에 나무 가로대를 댄 1 미처정도 높이의 벽돌담이 둘러싸고 있었고, 길의 입구 앞에는 건장한 경관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경관 주위에는 한무리의 구경꾼들이 안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나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목을 빼고 안쪽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안됩니다."
윤하가 길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경관은 우리를 멈추었다.
"아, 신참인가 보네. 내가 누군지 모르는구나."
의심스럽고 기분이 나쁘다는 눈초리로 윤하를 쏘아보면서 젊은 경관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경찰 신분이 아닌 이상 이 선안으로 들어갈수 없습니다."
경관의 말은 무시하며 윤하는 지갑에 민증을 꺼내 보이고는 그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경관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황급히 테이프를 들어 우리가 지나갈수 있게 해주었다.
"죄...죄송합니다. 이름만 듣고 얼굴은 뵌적이 없어서... 설마 젊은 여자분이실줄은..."
"아, 아니 괜찮아요. 이런일 종종 있으니까. 이분은 나와 같이 일하는 의사분이에요."
"네, 알겠습니다."

 

"너, 뭐야? 경찰청에선 유명인사야?"
내 질문에 윤하는 웃기다는 듯이 특유의 장난끼 섞인 미소를 띄었다.
"나? 그렇다고 할수 있지. 정부에선 날 인정하지만 대중이 알면 정직 경찰인원인 아닌 사람이 마음대로 현장을 왔다갔다하고 범죄연구소를 사용한다면 뭐라 하겠어? 그러니까 난 일종의 Ghost Agent야. 수사에 협력하지만 공식적으론 그어떤 기록에도 남지 않지. 보통 규리나 다른 수사관의 덕으로 돌아가. 규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공으로 되면 나도 상관은 없어. 명성 때문에 하는것도 아니니까."

 

나는 윤하가 그집에 도착하면 즉시 뛰어들어가 팔을 걷어붙이고 현장을 조사할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무슨 생각인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무관심한 태도로 큰길을 왔다갔다 하면서 땅과 하늘, 맞은편 집, 그리고 자동차 바퀴 자국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난 아마 그저 나에게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한 수작으로 보였다.


어쨌든 윤하는 그 일을 끝낸 다음에는 집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아니 길 옆에 난 잔디밭을 따라 걸어갔는데 눈은 계속 땅을 살피고 있었다. 도중에 두 번 멈춰 섰는데, 그중 한번은 슬며시 웃으며 만족한 듯한 탄성을 내는걸 들었다. 진흙땅 위에는 수많은 발자국들이 나 있었다. 하지만  경찰들이 이미 그 위를 어지럽게 걸어다녔기 때문에 나는 윤하가 거기서 뭘 알아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녀는 뭔가를 째빠르게 알아내는 데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내가 눈치 채지 못한 정보를 그녀가 알아냈으려니 짐작만 할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