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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20세기 탐정, 21세기 소녀

20세기 탐정, 21세기 소녀 07. 사건의 정리

20세기 탐정, 21세기 소녀 07. 사건의 정리

 


"이봐...."

 

"... 평소랑은 달리 차가운 어조로 반말을 툭 뱉는 걸 보니까 뭔가 기분 나쁜가 보다?"

 

내 물음에 윤하는 잠깐 시간을 둔후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언제 얘기해주려 했어?"


"뭘?"


"김유빈이랑 고등학교 동창이라며? 근데 왜 아까 내가 김유빈 얘기할땐 모른다고 했냐? 왜 거짓말 했어?"


"넌 내게 그여자 작품 본게 있냐고 물어봤고 난 보지 않았다고  대답했어."


뭐라도 할 여지도 없게 대답해 기가 차게 만드는 윤하의 재주.... 가끔은 그녀에게 정말로 친구라는 게 있을까 궁금하다. 어쩌면 그녀의 맘속에는 친구라 불리울 사람은 그저 친분을 가장한 장기판의 말로 밖에 존재하지 않을수도 있겠다.


"그럼 김유빈이랑 친하긴 한가 보지?"


"그여자 얘긴 이제 그만하자."


유빈의 얘기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우리는 오후 1시에 사건현장을 떠났다.
윤하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주위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피씨방을 찾아가 긴 이메일을 보냈다. 그다음 차에 올라타 규리가 준 주소로 향했다.

 

"아무리 내 재능이 뛰어나지만 직접 발로 뛰어서 얻은 증거가 최고지. 솔직히 말하면 이  사건은 대충 머릿속에서 정리됐어. 하지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얻어두는게 제일 낫겠지."


"근데 아까 기정사실처럼 말한 범인의 인상착의 말이야.... 진짜로 그렇게 자신할 정도롤 확신하는 거야?"


"그럼! 틀림없는 사실들이야. 내가 현장에 도착했을때 가장 먼저 눈에 띈건 길 가장자리에 난 자동차 바퀴야. 어젯밤에 내린 비는 일주일 만에 온 거니까 비가 그친후에 생긴게 틀림없지. 전진 자국이랑 후진 자국을 비교했을때 앞바퀴 하나만 흐렸어. "


"그럼 그 사람 키는?"


"사람의 키는 십중팔구 보폭을 보면 알 수 있거든. 진흙땅이랑 먼지투성이인 방에서 걸음폭을 봤고. 그리고 벽에 글씨를 쓸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눈높이보다 살짝 높게 쓰게 되지. 그 글씨가 180센티미터정도 높이에 쓰여 있었으니 키를 짐작하는건  식은죽 먹기지."


"혈기왕성한건 어떻게 알았지?"


"1.4미터난 되는 정원의 물웅덩이를 한걸음에 넘어갈 정도면 노쇠한 사람일리는 없지. 피해자가 신은 구두는 웅덩이를 돌아서 갔는데, 운동화는 그걸 뛰어넘어 갔더라고. 내가 하는건 신비스러운 일이 아니야. 그저 관찰한걸 토대로 추론하는 거지. 더 궁금한거 있어?"


"손톱길이..."


"벽에 씌어 있던 글씨는 피에 젖은 집게 손가락으로 쓴걸꺼야. 돋보기로 보니까 글씨를 쓸때 회벽이 조금 긁힌 자국이 있더라고. 손톱이 짧았다면 긁히지 않았겠지."


"얼굴이 붉다고 한건?"

 

마지막 질문에 윤하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살짝 장난 섞인 웃음을 지었다.
"아, 그건.....좀 과감하게 넘겨짚은 거야."

 

"뭐야~? 참나... 그럴듯 하다가 막판에 넘겨 짚는건 뭐야."


"그래도 내 말이 맞을거야. 지금 단계에선 더이상 묻지 말아줘."


생각할수록 더 복잡해지기만해서 이마에 손을 얹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 골치 아파! 생각할수록 의문투성이야. 두사람이 어떻게 빈집으로 들어간거지? 독약은 어떻게 먹였고? 바닥의 피는 누구 꺼야? 여자 반지는 거기 왜 있어?"


윤하의 얼굴에는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미소가 있었다.
"이 사건의 과제를 간단명료하게 잘 정리 했는데? 내 나름대로 대충 정리를 하긴 했는데 아직까지 애매한 문제가 많이 남았어. 자, 사건에 대해선 그만 얘기하자. 마술사가 자기 속임수 설명하는거 봤냐? 나도 내가 일하는 방식을 너무 많이 알려주면 아마 나도 보통사람이랑 다를게 없다고 여길꺼 아냐."


그 애의 걱정에 나도 모르게 콧방귀가 나왔다.
"그럴 일은 없을것 같다.... 완전 신기에 가까운 경지의 추리를 봤는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겠냐?"


내 칭찬에 윤하는 처음으로 인간다운 면모를 보였다. 내 사탕발림 달콤한 말에 우쭐한듯 얼굴을 살짝 붉힌 것이다.
보통 여자들은 자신이 예쁘다는 말을 하면 좋아하지만 윤하는 자신의 솜씨를 칭찬해주는 게 더 좋아하는듯 하다.


"한가지만 더 알려줄까? 가죽 신발을 신은 사람과 운동화를 신은 사람을 같이 차에서 진입로로 걸어 들어갔다고 했지? 아마도 팔짱을 낄수 있을정도로 친근하게 들어갔을 거야. 근데 들어가서는 가죽 신은 가만히 서있고 운동화는 왔다갔다 하더라고. 그리고 그 사람은 걸을수록 점점 더 흥분했고. 보폭이 점점 더 커진걸 보면 알수 있지. 계속 말하면서 흥분은 정점에 달했고 급기야 폭발하기에 이르렀고, 비극이 일어난거지. 지금 내가 아는건 다 말한거고 나머지는 단지 추측에 불과해. 그래도 그거 토대로 조사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거야."


불현듯 윤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핸드폰을 들어 무언가를 검색했다.


"운전하면서 뭐해! 내가 검색해 줄테니까 뭔지 말해봐."


내 제안에 윤하의 얼굴은 전보다 더 얼굴이 빨개지면서 극구 반대했다.


"아...아니야! 괜찮아. 내가 찾을게."

 


워낙 강하게 반발을 해 알았다곤 했지만 곁눈질로 슬쩍 봤을때 윤하의 핸드폰에는 <두개의 눈물> 의 공연 시간이 보였다.

 

 


도대체 뭐가 진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