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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20세기 탐정, 21세기 소녀

20세기 탐정, 21세기 소녀 09. 예상치 못한 손님

20세기 탐정, 21세기 소녀 09. 예상치 못한 손님





오전에 돌아다닌 일이 몸에 너무 무리였던지 오후가 되자 나는 지쳐 쓰러졌다. 윤하가 음악회에 간 후, 나는 소파에 엎드려 한두 시간만이라도 자보려고 노력했다.하지만 허사 였다. 그날 격은 일로 정신이 너무 혼란스러웠고 괴상한 공상과 추측이 내 머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게다가 눈을 감을 때마다 내 앞에 뒤틀리고 섬뜩한 표정을 한 죽은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전쟁터에서 물론 많은 죽은이의 얼굴을 보곤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놀란 얼굴 아니면 고통에 일그린 얼굴이였다. 연민이 드는 얼굴들...


하지만 이녹 박의 얼굴은 달랐다. 증오, 사악한 증오. 그 얼굴이 너무도 사악해서 이 세상에서 그를 사라지게 해준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정의는 계속 지켜져야 하며, 희생자가 흉악하다고 그 범죄가 묵과되어서는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아버지께서 내게 가르쳐주신 방식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문을 두드렸고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아이구, 미안. 성희양 자고 있었어?"



아주머니의 방문에 어차피 잠도 안오는데 뭐하러 눕나 싶어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



"아, 아닙니다. 무슨 문제라도...?"





"아니, 문제는 무슨. 그게 아니라, 여기 고윤하 양 손님이 오셔서 혹시 안에 있나 하고."



"어, 윤하는 지금 잠깐 나가고 없는데요. 실례지만 어떤 손님인지...?"
혹시나 사건을 의뢰하는 손님이거나 어쩌면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온 규리일까봐 서둘러 물었다.



"아 여기 윤하양 고모라는 사람이 와서. 잠깐 시골에서 찬거리 가져오신 모양인데. 아이고 이걸 어쩌나.... 그냥 돌려 보낼순 없잖아."


"암, 그럼요! 제가 모시고 있을께요.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



"아, 그럴까?"




뻔히 그렇게 답할줄 알았음에도 반가운 티를 내시며 주인집 아주머니는 안으로 중년의 여인 한명을 들여보냈다.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해서 그런지 피부가 많이 그을린듯 했지만 귀품있는 얼굴에 많지않은 주름, 그리고 깨끗한 손은 어쩐지 농사를 짓는 손은 아닌듯 했다.



"아, 학생이 김성희 양? 지금 아주머니에게서 우리 윤하 룸메이트라고 들었는데."



깊은 목소리는 교양이 베어났다. 그리고 시골에 사는 분이 룸메이트라는 말을 왠지 굴리면서 발음한다...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윤하 친구 김성희 입니다. 아, 사실 이제 학생은 아니고..... 아하하, 그보다 시골에서 오셨다는데 고모님 손이 너무 고우시다~."


내 칭찬에 그녀는 희한하게도 당황한듯한 인상이였다.



"오...오호호호... 우리 남편이 워낙 나를 이뻐해줘서...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그대로 지키지 뭐니? 호호호."


"아, 예... 부럽네요. 하하하하."



그 순간 방 밖에선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고모요?! 전 고모 같은 사람 없는데요?!! 도대체 누가-?!"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윤하의 얼굴이 보였고 고모를 보는 순간 심각하던 얼굴이 더욱 굳었다. 반면에 고모라고 자칭하던 여인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윤하야. 오랜만이다..."





살짝, 아주 살짝, 미묘하게 지금까지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목소리하고는 달라졌다. 여전히 저음이였지만 기품있는 중년의 여인보다는 더욱 젊은 여자의 목소리...




두 마디밖에 읊었을 뿐인데도 그녀의 목소리는 매혹적이였다. 마치 누군가 갑자기 방안에 아편향을 피워 올린듯 몽롱하게 만들정도로...






윤하는 눈을 감고는 긴 숨을 내뱉고는 눈을 떴고 웃는 얼굴로 주인 아주머니를 바라 보았다.


"제가 착각했네요. 우리 작은 고모님이세요. 들여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니, 내가 과일이라도 깍아 대접할까?"


"아닙니다. 저희가 대접한뒤 보낼께요."
그말과 함께 윤하는 문을 닫고는 얼굴에서 미소를 걷었다.




자기를 찾아왔다는 고모는 쳐다도 보지 않은채 바로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가더니 노트북을 켜기 시작했다.




"뭐하러 여기까지 왔냐?"







윤하의 너무 당연하다는 듯의 반말에 너무나 당황할수밖에 없었다.




"야, 고윤하?! 이게 무슨 버르장머리야?!"
너무나 기가 막혀서 자리를 벅차고 일어나 윤하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물었다.






하지만 고모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부드럽게 웃으며 내 손목을 잡고선 나를 다시 앉혔다. 무슨 영문인지 묻기도 전에 그녀는 다시 아까처럼 젊은 목소리로 윤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많이 티나?"



"시골에서 올라왔다는 여자가 손이 그따구냐? 얼굴에 주름도 보톡스 맞는 귀한댁 여사만큼 조금 만들고선 어딜 시골 고모라고 사칭을 하고 다녀?"


"안그래도 네 룸메이트가 아까 그점을 의아해 하더라."




"그래?" 시큰둥하게 물으며 윤하는 흥미롭다는듯이 내 쪽을 쳐다 보았다.
"나랑 다니더니 너도 한두가지 배운게 있나보다."



윤하의 말에 뭐라 대답하지도 못하고 난 벙쪄서 둘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이게.... 무슨....?"




"왜? 뮤지컬 Tell Me 할때 보고 좋았다매? 이런애랑 사귀는 사람은 진짜 행운아라매?"




"어머, 진짜? 성희씨 내 팬이구나~"















윤하의 말을 한참을 곱씹고 나서야 윤하의 말의 뜻을 알수 있었다.













"배우 기......김......김유빈?!!?!?!?!!!!!!!"





"반가워요~"






놀라서 그날 세번째로 자리에서 튀어 올랐고 나조차도 알아 들을수 없는 회괴한 소리를 벽까지 뒷걸음질을 쳤다.







왜 못 알아 봤을까?! 다시 찬찬히 뜯어보니 보였다. 배우 김유빈의 모습이.


아니, 그녀가 더 이상 중년의 여성의 연기를 멈추어서 알아 본듯 하다. 마치 그녀의 변장은 화장발이 아니라 자신이 마음대로 자신의 자아를 주물러 만드는, 자신의 연기로, 자신의 의지로 상대를 홀려서 속이는 것 같았다. 지금은 속일 이유가 없으니 마법을 풀은듯이....




"미쳤냐? 왜저래?"
윤하가 쏘아 붙히고는 다시 모니터를 주시하며 물었다.
"왜 왔냐니까?"




"아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그게 할 소리야?"





머리가 어지럽다....













"너 같은 친구 둔적 없어."





김유빈은 무심하게 말하는 윤하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기만 했다.
"에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오늘 내 공연 왔드라~ 나 완전 감동했잖아."



!!!!!!!!!!!!!!!!!!!!!!!!!!!!!!!!!!!!!!!!!!!!!!!!!!!!!!!




"그럼 노먼 네루다 공연이 아니라...?!"
내내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물은 내 질문에 민망하면서도 짜증났다는 듯이 윤하는 빨간 얼굴로 나를 째려본후 유빈을 쏘아 봤다.





"내가 미쳤냐?! 네 공연을 내가 왜 봐?! 그럴만큼 한가하지 않아! 지금 사건 땜에 바빠! 게다가 시간이 있어도 안봐!"



소리를 빽 지르고선 다시 모니터를 미친듯이 두드리는 윤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더니 그녀의 귓속으로 내가 겨우 들릴만큼 나즈막히 속삭였다.





"남장하면 못 알아볼까봐? 사랑하는 사람을..?" 속삭임과 동시에 윤하의 귓속으로 신음 비슷한 숨을 불어넣는다.

















꼴깍.....








나도 모르게 벽에 바싹 붙어 있지만 그들이 나를 인식할수 있다는 것도 잊고선 내 앞에 일어나는 야릇한 장면에 침을 크게 삼켰다.







사랑하는 사람?










붉어진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유빈을 거칠게 밀고는 윤하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려는 듯 귀를 문지르며 숨을 골랐다.






"내가 사는 곳은 어떻게 알았어?"






"찾아갔는데 없길래 박규리한테 물어 봤지."



또다시 그 아편-목소리를 사용하며 윤하에게 요염하게 다가가는 유빈을 보며 제발 지금 당장 벽속에 스며들어서 이 불편한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벽속에 스며들어 훔쳐보고 싶은 생각이였나..? 너무 정신없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차 생각이 안났다.





자신의 코앞까지(진짜로 코앞까지) 다가온 유빈을 보면서 당황한 듯 평소 확고했던 윤하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내가 눈에 들어왔는지 윤하는 두손으로 유빈의 어깨를 붙잡고선 멀찍이 떨어 뜨려 놨다.





"흐어-"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는지 윤하가 마법을 풀자 폐가 팽창하면서 숨을 힘껏 빨아들였다.







"나가." 짧은 한마디만 하면서 윤하는 유빈을 문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또 들를께 윤하야~."




다시 고모 목소리를 내는 유빈에 얼굴에 대고 문을 닫고는 등을 문에 대고 기대는 윤하와 등을 벽에 바싹 붙힌 나와 눈이 맞았다.





"방금 일은 잊어 버려..."